척암 김도화 선생 '이산정(泥山亭)' 복원준공식

person 안동시
schedule 송고 : 2012-09-24 10:23

한일합방대반대지가(韓日合邦大反對之家)라는 문필을 통해 국권 회복을 위해 평생을 일관한 안동의병장 척암 김도화 선생 서세 100주년을 맞아 선생의 유적인 이산정(泥山亭) 복원준공식과 추모학술강연회가 일직면 귀미리에서 열렸다.
척암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의병활동을 논의했던 이산정은 지난 2010년부터 해체수리 공사에 들어가 마무리하게 되었다.
 
김도화(金道和 : 1825生 ~ 1912卒 )선생의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庵),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구와(龜窩) 김굉의 증손이며 김약수(金若洙)의 아들로서 안동의 일직면 귀미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부인 김굉은 대산 이상정의 문인이고 모친 정씨는 입재 정종로 (立齋 鄭宗魯)의 손녀이며 손재 남한조(損齋 南漢朝)의 외손녀이다.

퇴계학통의 적전이라 할 이대산의 학통이 손재 남한조로 이어지고 다시 정재 유치명으로 전승 되었는데 척암 김도화는 이러한 가문의 영향으로 25세인 1849년부터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스승이 서거하자 서전(敍傳)을 짓고 기문록(記聞錄)을 작성하였다. 68세에는 서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69세인 1893년 유일(遺逸)로 의금부 도사를 제수 받았다.
72세인 1896년에는 의병대장으로 추대 되었으며 여러차례에 걸처 상소문을 올렸는데 특히 이등박문에게 격고통감문(檄告統監文)을 보냈다.
왕명으로 의병이 해산되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리고 두문불출하였으며 당시 영남유림의 태산북두로 추앙을 받았다.
그의 문하에는 동산 유인식, 오헌 김홍락, 해창 송기식, 경암 백규,야산 정창조, 석암 홍의흠, 화남 김만조등을 비롯하여 400여명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척암 김도화 선생은 조선말 서산 김흥락과 함께 퇴계학통 적전 계승자로서 대표적 양대 맥을 이루었다.
 
이날 행사에는 기관단체장, 광복회원, 청년유도회, 의성김씨 귀미 문중 후손 등 500여명이 참석했으며, 안동대학교 이해영 교수가“척암 김도화의 생애와 사상”을 강의하고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은“척암 김도화의 의병항쟁”이란 주제로, 한동대학교 김윤규 교수는“척암 김도화의 문학세계”에 대해 강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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