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휘정, 15년 만에 후손 찾아 훈장 전수

person 봉화군청
schedule 송고 : 2010-06-23 09:24
옹 건국훈장 애족장 1995년 추서

독립유공자 김휘정(95년 애족장)은 1995년도에 훈장수여 대상으로 결정되었으나 그동안 후손을 찾지 못하여 전수를 하지 못하였으나 다행히 금년에 후손 되는 김식(독립유공자의 증손)님을 찾아 6월 정례조회에 훈장을 전수하였다.

 

■ 독립유공자
  - 성    명 : 김휘정(金輝珽)
  - 생존기간 : (1841)~1901.10.10.
  - 출 생 지 : 경북 순흥
  - 운동계열 : 의병
  - 훈    격 : 애족장(1995년)

■ 전수대상자
  - 성    명 : 김식(金湜)
  - 독립유공자와 관계 : 증손
  - 1936년생으로 봉화군 물야면 거주

■ 공적내용
경북 순흥(順興)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경북 순흥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김휘정은 1895년 8월 일제가 경복궁에 침입하여 국모를 시해하였다는 변보(變報)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이어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한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과 복제개혁까지 강행되자 그 분노는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향리인 순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순흥지방에서 활동하는 한편 운강(雲崗) 이강년(李康 ) 의진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항전하였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전투로 말미암아 군사가 흩어지고 병기가 부족하여 그를 수습하기 위해 험지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적들이 쳐들어와 그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 때 그의 아들 김건규(金建奎)가 자청하여 잡혀가 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여러 전투에서의 부상과 아들의 옥살이로 인한 충격 때문에 병들어 순국하였다.

이 때 유인석 의병장은 글을 보내어 위문하기를 "아버지는 나라를 위하여 천고의 대의를 일으키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죽음을 대신하였으니, 이는 효도에 죽도 또 대의에 죽은 것이라. 모두 천하 후세에 길이 칭찬받을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함께 연합전투를 한 이강년 의병장도 그가 병으로 죽은 것을 한 팔을 잃은 것같이 애석하게 여겼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위문하기를 "아들은 당연히 죽을 일에 죽었으니 아버지도 죽을 일에 죽은 것이다. 한 집안에 효도와 의리가 어찌 그리 혁혁하오. 원컨대 시종일관하여 국사에 힘을 다하도록 합시다."라고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안동넷 & presste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의 다른 기사